저는 어릴 때부터 이사를 거의 가지 않고 한 동네에서만 오래 살았는데요,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소위 이런 친구들을 저는 N년 지기라고 불러왔는데요, 여러분은 혹시 '지기'의 뜻을 알고 계신가요? 지기라는 한자어를 살펴보면 알 지(知)에 자기 기(己)입니다. 결국 진정한 친구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주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죠. 저는 참 감사하게도 이런 지기들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중인데요, 아무래도 친구를 빼놓으면 저의 하루도, 그리고 삶도 이야기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산 적도 많지만, 친구들과 산 적도 꽤 많습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기숙사나 친구와 함께 셰어하우스에 살거나 자취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최근에는 저의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한 명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요, 무려 초등학교 2~3학년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입니다. 같이 사는 건 처음이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하고, 지난 추억 이야기를 하느라 밤을 샐 뻔한 적도 있었죠! 물론 저의 모든 우정이 아름답고 핑크빛으로만 가득했던 건 아닙니다. 특히 저처럼 괴팍한(?) 사람과 친구가 되려면 상대방은 일종의 난관들을 통과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함께 쌓아왔기에 지금 '지기'라고 부를 수 있는 단단한 관계가 된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지지고 볶는 우정과 관련된 한중일 영화 3편을 소개해드릴까 하는데요, 여러분도 이 영화들을 보시고 각자만의 지기들을 떠올리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7️⃣<써니>
세상에는 수많은 우정을 다루는 영화가 있지만, 저는 항상 이 영화를 빼먹지 않고 떠올리곤 합니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저는 중학생이었고,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씬들은 저에게 일종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직 그때 고등학생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함께 노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리고 그 친구들과 그때도 여전히 함께 하곤 했기 때문이죠. 영화에서는 이른바 '소녀시대'팸과 '써니'(7공주)팸이 나오는데요, 저에게도 그런 팸이 하나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맹렬하게 공격하곤 하는 이 팸은 서로의 말을 듣진 않고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한다고 해서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줄여서 '듣듣 팸'이 되었습니다. 벌써 이 팸은 멤버 변동(?) 없이 10년이 넘었는데요. 마치 써니 팸이 어른이 되어 조금은 변한 모습과 태도로 서로를 대하는 것처럼 저희도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하게 될까, 조금 걱정 반 기대 반의 감정이 듭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에게 이 영화는 일종의 '전형적인 한국 영화'에 가깝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그 총천연색의 과거 장면들이 이 영화를 계속 아련하게만 보고 싶게 합니다. 이화정 평론가는 이에 대해 "필터를 통과한 듯 바랜 과거는, 청춘의 단절을 가져온 비극적인 사건에도 여전히 꿋꿋하게 또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는 판타지의 공간"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지나가버린 시절, 다시 돌아오진 않을테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언제든 회상 가능한 이 판타지의 공간은 항상 우정에 대한 향수(鄕愁)를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는 꽤 감정적인 사람이긴 합니다만(겉으로는 잘 티가 안나서 "너 T야?"라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어릴 때는 훨씬 더, 이를테면 '감정 과잉' 상태의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특히 좋고 싫음이 명확해서 좋은 건 좋아서 어쩔 줄 몰랐고 싫은 건 하기 싫어서 난동을 부리는 그런 사고뭉치였죠. 그래서 특히 어릴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전학을 갈 때면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곤 했습니다. 좋아하는 감정으로부터 멀어지는 싫은 일이라니!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란 말입니까! 특히 제가 어릴 땐 무려 초콜릿 한 쪽도 친구와 함께 나눠먹어야 하고, 무려 화장실도 서로 같이 가는 것이 일종의 당연한 문화(?)처럼 자리잡았던 시기였기에 더욱 그랬죠. 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완벽하고 이상적인 친구관계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나 자신'과 친구는 별개의 존재이기 때문이죠. 친구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안생'과 '칠월'의 관계에 더욱 몰입하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영화 속 대사가 아직도 저에게 좋은 울림을 주는데요.
"그날 칠월은 한참 울었다. 가명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헤어짐이 슬픈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이었다. 안생을 자신만큼 사랑할 수 없어 실망했고, 인생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없음에 낙담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어른이 된다는 건 원래 이런 것이라는 걸."
영화는 굉장히 극적이고 복잡한 사건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생과 칠월의 관계에 애틋함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모로 반전이 있기도 하니 이 글을 읽고 여타 정보 없이 한 번 보시는 걸 추천 드려요!
마지막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현재 핫하게 상영관에 걸려 있는 작품입니다. 상영하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아 여러모로 아쉽기도 합니다.
저는 '솔직함'을 굉장히 큰 무기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건 제가 많은 것들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저의 열등감, 부진함 등등을 언제나 좋게 포장하고 싶어하죠. 그리고 아마도 모두가 이런 마음을 한켠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솔직함'은 언제나 큰 장점이자 돋보이는 부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의 솔직함이 참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두 친구가 서로에게 온전히 기대는 것, 그리고 그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유려한 그림체로 스크린에 잘 그려집니다. 앞서 소개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처럼 이 애니메이션도 원작 만화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 참에 저도 한 번 도전해볼까 합니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쿄애니 방화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교토에 위치한 '쿄애니' 애니메이션 회사에 한 범죄자가 방화사건을 일으켜 수많은 사상자가 났던 사건인데요. 저도 이 당시에 교토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거의 한달 간 매번 크게 불이 번진 자료 화면을 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영화는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두 친구 간의 우정을 담은 내용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무고하게 사고를 당하게 된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 또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짧은 러닝타임에 꽤 많은 눈물을 쏟으며 나왔는데요, 상영중일 때 극장에서 관람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마침 이 글을 쓸 때 옆에 있었던 친구가 추천해 준 노래인데요, 친구를 주제로 한 글인 만큼 오늘은 친구의 추천을 담은 노래를 들려드립니다~! 이번 한 주도 여러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한 주를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