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에 얽힌 추억
이 글을 읽고 계신 구독자 분들 중에 보드게임을 즐겨 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제목에서 이미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번 호의 주제가 바로 '보드게임'이거든요! 저는 대학교 학부생일 때 학과 보드게임 소모임에 가입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여러 게임들을 배우면서 다함께 즐겁게 플레이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중에서도 '보난자'라는 게임을 즐겨 했어요. 보난자는 여러가지 종류의 콩을 밭에 심고, 수확하면서 점수를 얻는 게임이에요. 그것만 하면 좀 단순해서 재미가 반감될 텐데, 중간중간 심은 콩을 교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합니다. 이때 같이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왜 내가 콩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무얼 줄 수 있는지' 등을 어필하는 대목이 참 재밌습니다. 왜 무얼 줄수 있는지 어필하고 콩을 교환해야 하나면, 같은 콩을 연속적으로 심었을 때 재화(금화)로 교환해서 최종적인 포인트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협상 시간에 열정적으로 손을 들고 상대를 설득해야 합니다!
한국엔 보드게임 카페도 참 많잖아요. 요즘은 레드버튼 같은 체인점도 많이 생겨서, 피씨방처럼 음식을 먹으며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점도 신기하더라고요. 저도 종종 방문하는 곳이기에 보드게임 카페에 얽힌 추억도 많은데요. 그 추억이 다음 플레이에도 '그때 재밌었지'하는 영향을 주는 것처럼, 게임에도 그런 용어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게임에서 '레거시'는 주로 이전 게임의 결과가 다음 게임에 영향을 주는 시스템을 의미해요. 특히 보드게임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구성물을 영구적으로 변경하거나 스토리가 다음 게임에 영향을 주는 경우를 이르죠. 레거시 시스템은 게임의 진행 방식에 따라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보통 한 번 플레이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특징을 가진답니다.
⛈️비구름을 따라서
오랜만에 강력한 스포주의 경고를 달고 시작합니다!
오늘은 읽으면서 공감가는 내용이 많아 좋고, 또 슬펐던 소설 한 권을 소개합니다.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라는 앤솔로지에 실린 김초엽 작가님의 단편, <비구름을 따라서>인데요. 이야기는 주인공 '보민'이 세상을 떠난 친구 '이연'의 추모식에 초대장을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이상한 점은 그 초대장을 보낸 사람이 바로 '이연'이었다는 사실이에요. '보민'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어떻게 된 일인지 '이연'과의 첫만남부터 되짚어갑니다.
보민과 이연은 보드게임 모임에서 만났는데요. 이연은 이때 보민에게 '노바 파우치'라는 신기한 게임을 하나 알려줍니다. 이 게임은 각각의 파우치에서 나오는 낱말들을 조합해 나온 물건과, 그 물건이 있을 법한 세계를 설명하는 게임입니다. 그 설명이 그럴듯하고, 상대를 납득시킬 수 있다면 다음 턴으로 넘어가는 식이죠. 예를 들면 '구멍이 숭숭 뚫린 우산'이 의미가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요?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에요. 보민은 어딘가 이상한 이 게임에, 누구보다 진심을 다하는 이연에게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한마디로 매료된 거죠. 이후 둘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둘은 룸메이트가 됩니다.
한편 이연의 추도식에서 보민은 자신과 함께 초대받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한 명은 노바 파우치의 개발자이고, 한 명은 이연과 함께 일했던 옛 직장 동료죠. 그리고 그들에게서 보민은 '세계를 건너온 물건들'에 대해 듣게 됩니다. 과학시간에 삼투 현상에 대해 배우잖아요. 세계와 세계 사이에도 그런 반투막이 있다면, 그 막을 뚫고 건너온 물건들이 있을 거라는 게 이연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연은 버려진 물건들을 점점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다른 세계에서 온 물건들을 찾아냅니다. 바로 이곳에서 저는 책의 핵심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는데요. 그 물건들은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반투막을 통과해 이곳으로 온 물건들이었을까요? 아니면 이연이 그 물건들을 남다른 시선으로 보고 의미를 부여해줬기 때문에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걸까요?
더불어 책에선 이연의 죽음도 미스터리하게 그려지며, 이연이라는 사람도 막을 건너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고 싶어지는 결말이기도 했어요) 그리 길지 않은 단펴이니, 여러분도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아 참참. 이연이 상상한 '녹색'의 세계도 매우 아름다우니 꼭 느껴보시길 바라요.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들을 함께 공유하며 마치겠습니다.
"그거 아세요? 얼음물 목욕을 하면 너무 고통스럽고 온몸이 덜덜 떨리는데,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대요. 우린 어떻게든 고통에 적응해 살아갈 방법을 찾는 이상한 몸을 가졌나 봐요. 그 사실이 지긋지긋한데 또 저를 살게 했어요."
"진짜 어이없네. 왜 굳이 그러는데?"
"음...그건 아마도..."
이연이 진지한 표정을 하더니 곧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쓸모를 증명하라고 말하는 세계에 저항하려고."
"어떤 세계든 거기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거야. 밤하늘만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그러니 서로 닿을 수 없어도 먼 곳의 별처럼 말해줄 수는 있겠지. 다른 가능성이 있다고. 그곳이 전부가 아니라고."
최근에 빠져 있는 곡을 추천드립니다. 무겁지 않은 멜로디가 여름이랑도 잘 어울리는 노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