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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그 후
이번 호는 웨스 앤더슨의 작품처럼 화려한 색감과 뛰어난 미감을 가진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감'하니까 생각난 건데 여러분들도 집을 꾸미는 행위, '집꾸'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저는 독일에 이사하면서 집을 꾸미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답니다. 옛날에 교환학생을 할 때 독일에 집이 생기면 꼭 들이고 싶었던 Butlers에 있는 그릇들로 찬장을 채웠고요. 렉손 조명을 사서 책상에 놓아두고 독서등으로 쓰곤 한답니다. 이렇듯 공간이나 다이어리를 꾸밀 때 한 사람의 '취향'이 잘 반영되는 모습이 전 참 좋더라고요. 나라는 사람과의 동거가 길어질수록 나의 취향을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매력적이지 않나요? 그게 꼭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고 경험한 것들이 다양해지면서 바뀔 수 있다는 것도요. 언젠가 방이 두 개 정도 있는, 진짜 제 집을 사게 된다면 그 공간만은 제 취향으로 가득! 채워볼 생각입니다. 그날까지 반짝이는 미감을 열심히 길러둘게요. (이것은 미래의 저를 위한 다짐입니다 🤣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이번 호의 주제를 정하면서 DJ징징과 오랜만에 음성통화를 했습니다. 주제에 맞는 책은 어떤 게 있을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것처럼 '표지가 아름다운 책'을 추천드립니다. 사실 어떤 책의 표지가 '예쁘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저는 방향성을 정하자마자 떠오른 책들이 몇 있어서 바로 가져왔습니다.
첫번째는 청예 작가의 <라스트 젤리 샷>이라는 책입니다. 표면이 젤리처럼 찰랑거리는 하트 모양의 표지가 굉장히 인상적인 소설이에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로봇 삼남매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들의 창조자이자 연구자인 '갈라테아'가 부여한 지능/노동/간병의 신이라는 별칭을 받고 사회화 훈련을 명목으로 각각의 가정에 파견됩니다. 각자의 가정에서 그들은 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기 때문에 내린 어떠한 결정으로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 사고 때문에 윤리재판에 회부되고 심판받는 내용이 소설의 주요한 이야기예요. 구병모 작가는 이를 두고 '이질적이지만 언젠가 미래에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이 재판정에 독자를 초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과학기술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머지 않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흥미로웠던 소설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했던 책 속의 구절을 함께 소개할게요. 두번째는
"용기를 내세요. 완전한 사랑은 타인에게서 받을 수 없고, 오직 스스로만 줄 수 있어요."
두번째는 아인 작가의 <러브 체리 카니발>입니다. 이 책은 포스타입 플랫폼의 화제작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케이스인데요. 굉장히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에요. 바로 감염되면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로 변하는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것! 학교 내에 퍼진 이 바이러스의 무시무시한 감염속도에 대항해, 주인공들은 과연 사랑도 사람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요? 책 소개에 나오는 사랑이 곧 재난이 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먹어야 하는 이야기 라는 문장이 매우 강렬한 책입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설정이 정말 흥미로워서 올해 독서 목록에 넣어두엇어요. 무엇보다 표지가 첫번째 책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으로 매우 화려하고 생동적인 색채감을 자랑한답니다.
마지막은 고선경 시인의 <샤워젤과 소다수> 리커버 에디션입니다. 이전에 안희연 시인의 <당근밭 걷기> 시집을 소개할 때도 같은 버전의 책 표지를 이미지로 보여드렸는데요. 저 버전의 시집들이 참으로 제 취향을 저격하는 디자인이더라고요! 특히 시집은 두께가 얇아 휴대성이 좋기 때문에 가방에서 표지가 예쁜 시집을 꺼낼 때 자기만족이 큰 것 같습니다. (저만 그렇다면 ... 혼자 아쉬워하겠습니다만) 이 시집의 표제작인 <샤워젤과 소다수>에 제가 좋아하는 문장이 많습니다. 함께 읽어보실까요?
너에게서는 멸종된 과일 향기가 난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산책로 /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
네 손의 아이스크림과 내 손의 소다수는 맛이 다르다 / 너의 마음은 무성하고 청보리밭의 청보리가 바람의 방향을 읽는 것처럼 쉬워
생활이라는 건 감각일까 노력일까
시간이 잼처럼 졸고 나는 불붙은 기억이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