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기만 해도 설레는
제가 나고 자란 부산의 '영도', 특히 제가 다녔던 등굣길은 온통 벚나무로 가득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너무 일상이었고, 매년 봄이면 보던 풍경이라 크게 아름답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는데요. 영도를 떠나 생활하다가 봄에 그 길을 다시 걷게 되면, 그 아름다움에 가끔 놀라곤 합니다. 몇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화려한 봄을 만들어주는 그 나무들 사이사이에 제가 그 길을 걸으며 두었던 시선들, 웃음들, 친구들의 말이 생각나서 아주 그리운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일부러 벚꽃이 예쁜, 이른바 '벚꽃 명소'를 찾아 나들이를 하곤 했는데요. 이게 꽃 구경인지 사람 구경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사실 꽃은 잘 기억이 안 나고 그 나들이 때 먹은 맛있는 음식 정도만 기억이 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벚꽃'하면 어떤 추억이 가장 떠오르시나요? 저는 이번 레터메일을 쓰려고 떠올리다보니, 생각보다 분홍색 벚꽃에 얽힌 추억이 많더라고요! 저의 개인적인 TMI를 또 하나 말해보자면,,,
몇 년 전 제가 워홀을 위해 교토에 도착했을 때는 봄으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에 워홀을 계획하고 빠르게 진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캐리어를 끌고 앞으로 살기로 한 셰어하우스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 실감을 하지 못했었죠. 낯을 꽤 가리던 저였기에 적응을 하는데 하루 이틀 정도가 필요했어요. 이틀 동안 방에 처박혀 있다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밖으로 나가니, 조금씩 꽃이 피고 있더라고요! 설렘과 두려움이 서로 크기를 키우며 경쟁을 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설렘이 크게 이겼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일본어를 잘 하지 못했던 저이기에 근처 라멘을 파는 식당에 들어가서 읽을 수 있는 라멘을 하나 주문해서 먹었는데요. 마침 손님이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장님과 여러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긴장하며 떨던 저에게 많은 응원의 말을 해주셔서 아주 긴 식사를 하다가 나오게 됐는데요. 사실 전부를 알아들을 수 없었고, 읽을 수 있는 라멘 중 하나였던 '쇼유라멘(간장 베이스의 라멘)'은 제가 먹어본 라멘 중 가장 짠 라멘이었지만, 그래도 아주 따뜻하고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오던 순간, 저는 우연히 떨어지는 벚꽃잎을 하나 잡았는데요. 그 순간의 기억이 제가 이제껏 살아오던 터전을 벗어나 타지에서 적응을 하는 데에 아주 커다란 주춧돌이 되어주었습니다.
'벚꽃'이 주는 설렘은 어떻게 보면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사실 1년이 시작되는 1월이나,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보다도... 저는 봄이 온 것을 가장 명확하게 알려주는 벚꽃이 피는 4월에 뭔가 시작하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4월이 되면 새롭게 무언가를 다짐하기도 하고,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얻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벚꽃'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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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속 도라야끼
마침 오늘 일본에서의 생활 얘기를 한 김에, 소개해드릴 영화도 일본 영화로 하나 골라 가져왔습니다. 바로 <앙: 단팥 인생 이야기>입니다. '앙'이란, 우리말로 바꾸면 '팥소'에 해당하는 단어인데요. 이 영화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도라야끼'로, 일본의 단팥빵 같은 것입니다. 결국 그 안에 들어가는 팥소로부터 시작되는 영화인 셈이지요! 일본에서는 벚꽃 시즌이 되면 '오하나미'라고 해서 친구나 가족끼리 모여 벚꽃 나들이를 가는 것이 아주 일반화되어 있는데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만큼 벚꽃이 아름답게 핀 공원 여기저기에서 맛있는 것들을 팝니다. 저도 여러 '오하나미'를 다니며, 당고나 타코야끼, 초코 바나나와 같은 것들을 많이 먹었는데요. 그 중 하나로 '도라야끼'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따끈따끈하게 갓 나온 도라야끼를 먹으며 벚꽃을 보면 몸도 마음도 아주 든든해지는 기분입니다.
영화 속에서 '센타로'는 도라야끼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인데요,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어느 날, '토쿠에'라는 할머니가 아르바이트에 나이제한이 없냐며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거절을 했던 센타로이지만, 할머니가 들고 온 팥소를 먹은 후 결국 할머니와 같이 일을 하게 됩니다. 토쿠에 할머니의 팥소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가게는 점점 더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 가게에 대한 소문이 안 좋게 돌기 시작합니다. 그건 바로 토쿠에 할머니의 '손' 때문이었는데요. 과연 어떤 소문이었을까요? 알고 보니, 할머니는 이전에 '한센병'을 앓았던 사람으로, 그 흉이 손에 남아 있었던 것이죠.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치중해 퍼지곤 하는 편견과 혐오의 시선에 대해 이 영화는 잔잔하지만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토쿠에 할머니 이외에도,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요. 모두가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도 이 영화를 통해 큰 울림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사이사이 보이는 벚꽃들이 그 울림을 더욱 크게 만들어주는데요, 다가오는 봄, 벚꽃과 관련된 새로운 영화를 접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 드립니다!
🎵오늘의 노래: 오마이걸 - 다섯 번째 계절(SSFWL)
뭔가 '분홍'과 '봄'이라는 주제로 얘기를 하니 바로 떠오르는 노래였는데요! 꽤 유명한 노래였는데,, 오랜만에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뮤비도 봄 느낌이 나니 한 번 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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