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재판이나 기자회견과 같은 현장감이 가득한 씬인데요. 수많은 기자가 카메라, 마이크나 펜을 들고 주인공을 감싸며 다급하게 질문을 합니다. 이 씬에서 모든 조명은 기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인물을 가리키면서 자연스럽게 취재를 하는 주체는 사실상 조연이 됩니다. 이러한 조연들을 무대 중앙으로 올려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영화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 "이걸 밝히지 않으면 그게 언론인입니까?" - <스포트라이트>
저는 초마DJ와 함께 몇 년 전, 퓰리처상 사진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세계 곳곳에서 주목을 받아야 할 사람들과 사건들이 카메라에 담겨 언론을 통해 우리의 눈앞으로 전달됩니다. 물성으로만 보자면, 단순한 사진 한 장에 지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의미와 의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느껴집니다. 이 상은 언론인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에 의해 만들어졌는데요, 한 해의 진정한 '저널리스트'들이 호명됩니다. 이 영화는 미국의 '보스턴 글로브'라는 일간지의 '스포트라이트' 팀이 보스턴 지역 가톨릭 주교들이 자행한 아동 성폭행을 고발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스포트라이트' 팀은 이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성폭행을 고발하는 영화들이 많지만, 언제나 윤리나 재현의 문제와 관련해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문제적 장면을 전혀 집어넣지 않고도 충분히 사건을 진솔하고 강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진정한 기자가 무엇이며, 진정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알려주는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영화 속에서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은 아동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신부를 총 87명 찾았지만, 실제로는 300여 명이라고 합니다. 엔딩크레딧에도 관련 내용이 나오는데요, 실제 범죄의 규모와 보스턴을 시작으로 전세계의 동일한 범행 흔적들이 빼곡히 나열될 때 현실이 더 영화같다는 생각에 참담해집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당시에 적어두었던 메모를 이 기회에 인용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들이기에 기댈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은 그 기대를 온전히 초월적 존재에 바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초월적 존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 존재에 더 가까이 다가간 자라고 암묵적인 인정을 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또 다른 사회를 형성하고 위계를 세운다. 그 위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간의 일들이 결국 또 사람을 흔들리게끔 한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그런 신념을 인간만이 무너뜨릴 수 있는 이 아이러니.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 아이러니 속에 이미 그 초월적 존재는 사라지고 없다.
세상엔 수많은 일이 있고, 그에 맞추어 수많은 기준이 있다. 그래서 선과 악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절대적이지 못하고 때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대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아동 성추행이 그렇다. 아동 성추행을 저지른 신부는 자신을 찾아온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성추행을 저지른 것은 인정하지만, 나는 결코 그것을 즐기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이렇게 완벽한 악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언어가 나에게는 아직 없다.
실제로도 이 보도에 크게 도움을 주었을 미첼이라는 변호사가 너무 존경스럽다."
2) "뉴스는 역사의 초고" - <더 포스트>
앞서 소개드렸던 영화와 함께 보면 더 좋은 <더 포스트>입니다. 냉전시대, 베트남 전쟁, 펜타곤, 워터 게이트 등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긴박감이 넘치는 영화입니다.
저널리즘과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두 덩어리를 잘 녹여내려고 노력한 영화인데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제작기간이 1년 내외였다고 하는데 그런 단기간에 탄생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습니다.
신념이라는 것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만, 그 신념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무릅쓰는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더욱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존재하고, 세상은 언제나 그런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서로 책임을 지워가며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마침 저는 이번주에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라는 영화를 보고 왔는데요, 이 <더 포스트>에서처럼 메릴 스트립이 명연기를 펼쳐서 아주 반가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메릴 스트립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더 포스트>, 꼭 추천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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