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따뜻한 겨울의 초입을 맞나 싶더니, 첫눈이 과격하게 우리를 반겼던 11월이었습니다. 저는 서울/경기 지역에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던 때에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뉴스를 통해서만 눈 소식을 접했는데요. 항공편이 결항, 지연되는 등 적설량이 어마어마했더라고요! 딴 나라 얘기 같았던 광경은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점점 현실이 되었습니다. 도착해서 본 풍경은 마치 영화 '겨울왕국' 속 한 장면 같았어요.
회사에서도 폭설로 인한 조기퇴근과 재택근무를 시행했는데요. 첫눈이 내린 날에는 사람들이 퇴근 전 회사 건물이나 옥상에 눈사람을 여럿 만들었어요. 저는 팀 동료가 보내준 사진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됐는데, '도라에몽 눈사람' 등등 갖가지 모양의 눈사람들이 모여 있어 귀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삼사오오 장갑을 끼고 눈을 뭉쳐서 그걸 만들며 즐거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비로소 진짜 겨울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이 온 뒤로는 본격적인 추위에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전기장판 위에 누워 귤 까먹는 이 계절을 저도 얼마나 기다렸던지! 다들 몸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한 계절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여러분은 '눈' 하면 떠오르는 책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전 레터에서 언급한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떠오르곤 합니다. 소설에서도 눈이 아주 많이 내린 배경이 상세히 묘사되거든요. 하지만 이 책은 이미 소개드린 적이 있기에, 다른 책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바로 오늘 이 유명한 첫문장을 가진 소설, <설국> 입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산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아, 참고로 <설국>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인 <설국열차>와는 별개의 소설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알고 계셨던 정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종종 헷갈려서 덧붙여요. 영화 <설국열차>의 배경이 되는 원작소설은 그래픽 노블입니다. 1권은 탈주자, 2권은 선발대, 3권은 횡단이라는 표제를 갖고 있어요. 영화의 기본 설정인 꼬리칸 등의 열차 속 계급 사회는 동일하나 주인공의 행보가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니 이 부분도 흥미로우시다면 원작 소설을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럼 설국열차 얘기는 이쯤에서 줄이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볼까요? <설국>은 <설국열차>같은 모험과 폭동, 혁명 등의 스펙터클한 스토리와는 거리가 먼 소설입니다. 결말부에 비교적 큰 사건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를 제외하곤 탐미주의 소설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저도 저 첫문장에 홀려 책장을 편 김에 끝까지 읽게 된 케이스라, 제목이 비슷한 영화를 떠올리고 책을 집어드셨다면 생각보다 잔잔한 전개에 놀라실 수도 있다는 점 안내드리며...
주인공인 '시마무라'는 기차를 타고 국경의 긴 터널을 통과합니다. 창밖의 설원을 보며 회상에 빠져들기도 하다가, 문득 맞은편에 앉은 '요코'에게 호기심을 느낍니다. 요코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요코의 얼굴을 스치는 차창 속 빛 등이 아름답게 묘사되며, 주인공의 마음이 은연중에 드러나는데요. 나중에 나오지만 이 '요코'라는 존재는 주인공이 기차를 타고 만나러 가는 사람인 '고마코'의 연적입니다. 하여 과연 이 셋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 지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여러 날을 함께 보냅니다. 시마무라는 유럽 무용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둘이 처음 만났을 때 고마코는 게이샤 연습생이었는데요. 자신의 춤을 배운 선생님의 아들, 유키오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고마코는 게이샤의 삶을 택했습니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사람이에요. 특히 시마무라는 계속해서 삶의 허무를 이야기하고, 고마코는 그럼에도 삶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둘을 구분짓는 특징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느 날은 시마무라였다가, 또 언젠가는 고마코였다가 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겨울처럼 춥고 눈도 많이 내리는 계절에는 유독 그럴 때가 잦은 느낌입니다.
책의 배경이 되는 나가타현은 일본 내에서도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작가도 나가타현에 위치한 료칸에 머무르며 책을 집필했다고 해요.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오는 곳에서, 소복히 눈 쌓이는 풍경을 보며 읽기에는 좋은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의 노래: 몬스타엑스 - Sam ock - Remember
저도 겨울의 초입에 듣기 좋은 잔잔한 노래 한 곡을 추천드려요! 새벽에 일찍 나가는 날이 있으면 이 노래를 들으며 버스 창밖을 보는데 그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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