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자신의 몸에 얼마나 많은 흉터가 있는지 아시나요? 저도 세 본적은 없지만 굉장히 많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꽤 통각에 둔한 편이라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치기도 하고 어느새 흉터가 되어있는 상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흉터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아서 그냥 놔두고 몇 년 뒤에 슬며시 희미해져 있는 것을 알아차릴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술이나 굉장히 크게 다친 적도 없는데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흉 중에 가장 큰 것은 팔 안쪽에 있는 긴 칼자국(?)입니다. 이건 사실 어릴 때 동생과 싸우다가 난 손톱자국인데요, 그때 피도 많이 나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길게 무슨 칼자국처럼 흉이 남았더라고요. 그 상처를 만든 동생이 부모님께 크게 혼나는 걸 보며 고소해하느라 아픈 것도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추억(!)이 있습니다😄
저는 켈로이드 체질을 가진 가족이 있는데요, 그래서 굉장히 흉터에 예민해 하고 목욕탕이나 수영장처럼 몸을 드러내야 하는 장소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참 쓰리기도 했습니다. 사실 흉이라는 것은 이미 상처가 아물었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흉터의 고통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신경쓰인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원더>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당시에 꽤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기도 하는데요, 극 중에서 '어기'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날 봐. 누구나 얼굴에 흔적이 있어. 얼굴은 우리가 갈 길을 보여주는 지도이자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지도야. 절대로 흉한 게 아니야." 보이는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 - 즉 시선을 바꿔야 한다는 뜻인데요. 저의 가족에게 항상 해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타투를 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고, 부러 흉터 모양을 한 타투가 있는 것을 종종 보기도 했는데요. 이전과는 새삼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꽤나 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시선이 더 변하게 된다면, 흉터도 일종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당신의 악당이 아니다"
2018년, 하나의 메세지를 던지는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2018년 영국의 비영리단체 '체인징 페이시스' (Changing Faces)가 시작한 캠페인으로, 슬로건은 "I am not your Villain"으로, 우리말로는 "나는 당신의 악당이 아니다"로 불립니다. '체인징 페이시스'는 얼굴에 흉터나 눈에 띄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단체로, 이 캠페인에서는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미디어들이 악당 캐릭터를 재현하는 데에 있어서 얼굴 변형과 흉터를 이용했는지를 상기시킵니다. 해당 단체의 대표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산업은 다양성의 표현으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흉터를 악당의 축약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말 다시 떠올려보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많은 악당들의 얼굴에 새겨진 수많은 흉터들을요. 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미디어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캠페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캠페인을 지지하기 위해 영국의 영화 기관(BFI, British Film Institute)은 외모의 상처로 악당을 묘사하는 영화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외에도 다양한 단체들이 해당 캠페인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흉터에 대한 어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인상을 떠나서 그것이 특별하거나 특이하다고 인식되지 않는, 그저 별것 아니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처음 이 주제를 듣고 가장 먼저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영화는 바로 <벌새>입니다. 그런데 마침 생각을 해보니 프리다 칼로의 그림 중에 <가시 목걸이와 벌새>라는 자화상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번 편지의 사진은 이걸로 해야겠다! 하며 이건 운명같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벌새를 봤다고 착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초등학교의 화단에 있는 앵두나무 앞에서 몰래 앵두를 따먹으려고 했을 때입니다. 뭔가 윙윙 힘차게 날개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소리를 따라가보니 새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날개는 뭔가 나방 같은 날개가 달려 있는게 아니겠어요? 이,,,이게 뭐지,,,? 당황해하며 나중에 검색해봤는데 인터넷에서 벌새라고 하길래 저는 철썩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영화 <벌새>가 개봉했고, 저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벌새를 검색해봤는데, 알고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벌새를 볼 수가 없고, 모두가 벌새라고 착각하곤 하는 것은 바로 '박각시나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머리 쪽의 생김새가 새와 닮아서 다들 벌새로 착각하곤 한다는 거였어요! 크나큰 1N년 치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죠.
아무튼 제가 이 영화로 이야기하려던 것은 벌새와 박각시나방의 유사성은 아니고요, 바로 '흉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은희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정확하게 원인이라고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귀 쪽에 큰 혹이 생기게 됩니다. 몇 번의 병원을 거쳐 만나게 된 의사는 "수술로 잘못될 확률은 희박하지만, 상처는 남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은희의 뺨에는 수술 자국이 남게 됩니다. 병실에서 수술 후 아무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에도 은희는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합니다. 마치 작은 날개짓이더라도 1분에 몇 십 번을 해내고 있는 벌새처럼요.
영화에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인 '영지'라는 선생님이 나오는데요, 영지는 수술을 한 은희를 보러 와서 "이제부터 맞고만 있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같이 맞서서 싸워야 한다"는 조언을 합니다. 이런 조언을 건네는 영지의 삶이 정말 그렇게 흘러갔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영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벌새>는 어쩌면 실제 누군가의 삶의 한조각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은희가 살고 있는 90년대 후반의 한국, 그리고 그때 한국에서 벌어졌던 여러 일들이 그대로 영화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벌새를 극장에서 2번 넘게 본 기억이 있는데요, 볼 때마다 아주 펑펑 울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슬프거나 화나는 느낌이 아니었는데도 계속 눈물이 났어요. 참 이상한 마음이었습니다. 아주 아팠던 과거의 나날들이 지난 후의 흉터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어요. 영화는 굉장히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정서를 유지하는 듯 하는데요, 그럼에도 깊은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 도전해보시는 걸 추천 드려요!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머지는 온전하게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은 글의 주제에 좀 맞는, 위로가 되는 노래를 소개해드리고 싶었어요! 마침 제가 좋아하는 선우정아의 신곡이 나와 소개해드립니다. 뮤비를 보시는 걸 추천 드려요! 흉터를 안고 살아가는 몇몇 분들이 등장하는데요, <벌새> 속 은희, 그리고 거기서 몇 년을 뛰어넘은 저희까지 모두를 위로해줄 수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