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의 주제는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병원'인데요! 특수한 공간으로서 영화나 문학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곳이니만큼, 병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화 소식이 들리더라고요! 해서 이 작품을 여러분께 이야기 해드리려고 합니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주인공인 '영'이 전애인에게서 온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더 정확히는 5년 전, 영이 전애인에게 건넸던 일기가 무수한 교정부호와 함께 되돌아오면서요. 이 전애인이 바로 제목인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영에게 알려준 사람입니다. 우럭 한점은 비단 우럭의 맛이 아니고, 우주의 맛. 우리 자신도 우주의 일부이므로 우주가 우주를 맛보는 과정이라며 영에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사람이죠. 그가 마지막장에 짧게 덧붙인 쪽지에선 '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를 비롯한 인사말이 이어집니다. 뒤이어 편지의 주인은 곧 급히 출국하게 됐다면서 영에게 만남을 청합니다. 꼭 줄 것이 있다고요. 영은 뒤늦게 그의 존재를 재정의합니다.
5년 전에 엄마에게 '그'를 소개하려 했었다고.
영과 엄마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 바로 병원입니다. 영의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은 그곳에서 엄마를 돌보는데, 둘의 관계가 참 어렵습니다. 엄마는 자궁암에 걸린 사실을 아들에게 통보하면서도 쾌활하게 '엄마 자궁암이래! 할렐루야다.' 외치는 강인함과, 동시에 친척들도 암에 걸렸으니 너도 백퍼센트 암환자가 될 거라며 영의 명의로도 암보험 두어개를 더 계약하라고 부추기는 현실적인 면모를 가졌습니다. 기독교인이며 아빠와 이혼 후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며 아들인 영을 키웠고.... 여기까지만 말해도 어떤 인물인지 감이 오시죠? 그런 엄마에게 영은 낯설디 낯선 존재로 각인됩니다. 영이 학생이었던 시절, 아들이 퀴어라는 사실을 최초로 목도한 후 그것을 정신병으로 정의하며 아들의 손목을 움켜쥐는 대목에서도, 의도치 않게 아들에게 큰 상처를 입힙니다.
영은 작품 초입에서 최초로 언금된 전애인과의 관계가 끝난 뒤, 그에게서도 마음의 상처를 입고 농약을 마십니다. 아메리카노에 부어서요. 그런 뒤 눈을 뜯는 장소도 병원인데요. 공교롭게도 엄마와 같은 병원에서 영은 눈을 뜹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중환자실이었다. 공교롭게도 엄마가 입원해 있던 아산병원이었다. 위세척을 마친 뒤 혈액투석을 하고 있는데 발치에 엄마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내가 바랐던 얼굴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 소리를 지르며 나를 때리거나, 냅다 울어버리거나, 주님으로 시작하는 기도의 형식을 띈 한탄을 시작하거나 일단은 뭐가 됐든 아침드라마처럼 감정을 터뜨리고 보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의 엄마는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 너무 애쓰지 마,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
그게 엄마가 할 말이냐고, 묻고 싶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 묻는 게 순서 아니냐고....(중략) ]
재회한 모자의 상봉 순간을 보면 이들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메울 수는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커다란 미지의 세계를 인정해야 하는 때
그렇지만 그녀의 삶이 겉잡을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한 후, 둘은 서로 붙어 있는 시간만큼 투닥거리며 조금이나마 서로를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영은 끝까지 관조의 태도를 이어가거든요.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정의할 수도 없거니와 사랑과 증오는 지겹지만 함께 가는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우리 아들 다 컸네. 주사를 많이 맞아 혈관이 툭 불거진 엄마의 손이 보였다. 피부가 마른 골판지 같았다. 엄마의 모든 것들이 낙엽처럼 바스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네가 너를 바라듯 주도 너를 바라고 있다.
잠시도 불쌍해할 틈을 주지 않는 여자였다, 엄마는.]
[예전부터 내가 좀 남자 같고 그랬잖니. 간도 크고 후회같은 건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너를 낳고 보니까 그게 아닌 걸 알겠더라. 아기 때, 너를 안고 있으면 막 지갑이 뚱뚱한 것처럼 배가 부르고 행복하고 그랬어. 그래서 자꾸만 겁이 나더라, 다치거나 부서지거나 없어질까봐.…허겁지겁 너를 찾는데 멀리 네 뒷모습이 보였어. 나는 가만히 네 뒤를 따라 갔다. 네가 두 발쯤 걷다 자꾸만 멈춰서기에 뭐하나 봤더니, 거리에 있는 모든 가게 앞에 서서 일일이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때로는 만져도 보고 그러고 있더라.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 모습을 뒤에서 보는데 화가 나는게 아니라, 덜컥 무섭더구나. 네가 더이상 내가 아는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에. 네가 보고싶은 것을 보고, 네가 걷고 싶은 길을 너의 속도로 걷는 게, 너만의 세계를 가진 아이라는 게 그렇게 섭섭하고 무서웠다.]
마지막 부분에서, 영과 엄마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대목에서 엄마는 그간 하지 않았던 속얘기를 영에게 털어놓습니다. 누구보다 강건하고 직진밖에 모르던 존재도 유약하게 만드는 병 때문이라고 영은 생각하죠. 그렇기에 영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맙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정말 미안한데 영영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하고요. 단 한번만이라도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영의 마음이 언젠가는 가 닿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이런 평화주의적인 결말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영이 바라는 것은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편안히 눈을 감는 일이니까요.
[핏줄이 연결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실은 커다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고작 지고 뜨는 태양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소 짓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 일.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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