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이번 호는 두 DJ 모두 영화를 보고 작성한 글을 레터로 보내드리게 됐습니다. 예전부터 서로 메인으로 소개하는 분야를 바꿔보자는 제안을 하곤 했는데요. 마침 환경재단에서 주최하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진행 중이어서, 영화제에 올라온 영화를 보고 각자 글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도서전이나 영화 행사 등을 함께 소개해드리는 특집호를 보내드릴 예정이에요! 전문적인 해설..보다는! 언제나 그랬듯 여러분들만의 재기발랄 도슨트 느낌으로요. 그럼 이번 호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새벽의 백사장
얼마 전 저는 강릉에 다녀왔는데요. 오랜만에 본 바다가 반갑고 또 여전히 좋았습니다. 강릉은 안목/강문/사근진/경포 등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해변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숙소가 경포해변 근처에 있어서 낮과 밤, 새벽까지의 바다를 실컷 볼 수 있었어요. 사람이 많은 여름의 해변답게 불야성을 이룬 가게들과 늦은 시각까지 끊임없이 터지는 폭죽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날 일행들과 해변을 걸으며 '해양 쓰레기'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던 울산 정자 해변은 관광지로 입소문을 탄 뒤 많이 더러워지고 수질도 나빠진 곳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좋아하는 장소긴 하지만 예전만큼 자주 가게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에 비해 강릉은 깨끗한 것 같다는 감상을 나눈 것도 잠시... 이른 새벽에 바다로 산책을 나온 저희는 모두 놀라고 맙니다. 😂 어젯밤 터졌던 무수한 폭죽들은 쓰레기통이 아닌 모래사장 위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그 옆으로 함께 밤을 불태웠을 술병들과 음식물 쓰레기들이 갈 곳을 잃고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죠. '깨끗하다'고 표현했던 바다를 위해 아침부터 많은 분들이 쓰레기를 치우며 고생해주고 계셨습니다. 저희도 플로깅하는 셈 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를 함께 주웠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역시 애초에 버리지 않는 것이 최고다! 라는 감상이었달까요.
비단 폭죽 뿐만이 아닙니다. 다 마신 일회용 커피컵부터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용기와 버려진 낚싯대까지. 해양 쓰레기 (바다 쓰레기 등의 용어로도 통칭됩니다)의 종류는 무궁무진합니다. 그중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의 존재감이 어마무시한데요. 매년, 세계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양이 최대 1천만t에 달한다고 합니다. kg으로 환산하면 100억 kg이나 되고, 이는 카타르라는 국가 하나를 덮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플라스틱은 특유의 난분해성 (쉽게 분해되지 않는 특성) 때문에 해양 생태계 악화의 주범으로 꼽힙니다. 이를 줄이려는 국제사회와 국내 지자체들의 노력은 늘고 있지만 역시 그에 앞서 개인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무더운 한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바다나 계곡으로 휴가 계획을 잡아두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조금 귀찮더라도 내가 가져간 쓰레기는 올바르게 처리하려는 노력! 함께 실천해봅시다.
(너무 공익광고 톤 같나요? ㅎㅎ 그치만 필요한 잔소리므로 꼭꼭 눌러 적어보았습니다)
🐋해녀와 돌고래
이렇듯 환경에 인류가 미친 영향은 고스란히 다시금 인류의 몫이 됩니다. 이번 호에서 소개할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는 그러한 환경 문제의 파급력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의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영화는 <숨비소리>인데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영화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스포주의)
영화의 주인공인 '쟈민'은 한국으로 국제 결혼을 해서 이주를 온 존재로, 시어머니 '순옥'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쟈민은 한국어 교실에서 해양 생물을 이르는 한국어 단어들을 배우다가 '돌고래'를 알게 됩니다. "해녀라면 돌고래를 봐야 한다."는 말을 들은 쟈민은 그날부터 쭉 돌고래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순옥은 그런 쟈민을 이해하기 어려워하지만, 결국 둘은 점차적으로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
맞습니다. 영화 자체는 해양 생태계 파괴보다는 사실 새로운 환경에 자리잡은 이방인의 낯섦과 적응, 소통과 이해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다만 그에 앞서 쟈민이 꼭 보고 싶어하는 '돌고래'에 잠깐 포커스를 맞춰보려고 해요. 이맘때 울산 장생포에 가면 돌고래 떼를 볼 수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맨눈으로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울산에 있는 고래바다여행선 (ㅋㅋ) 이라는 귀여운 존재가 탐사와 야간 연안 관광을 진행하면서 돌고래 떼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답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최근에도 참돌고래 약 200마리가 떼로 헤엄치는 광경을 발견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돌고래 떼가 '연안에서' 잦은 빈도로 목격되는 것이 좋은 소식만은 아니랍니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먹잇감이 많아졌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어서예요. 2021년도 기준으로 울산 인근 앞바다의 해수 온도는 이전 년도에 비해 약 8도 가량 상승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돌고래가 좋아하는 난류성 어종이 다량 서식하게 되었죠. 이같은 현상이 올해까지 쭉 이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수온이 더 높아져 28도가 넘으면 돌고래가 살기 힘들어집니다. 당연히 발견율도 현저히 낮아질 테고, 쟈민의 바람처럼 '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 일도 없을 거예요.
<숨비소리>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해요. "쟈민아, 아까 혜자할매 봤제. 아무리 눈앞에 좋은 기 있어도 숨이 다 되면 나와야 하는 기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인간의 탐욕을 떠올리게 됐어요. 아무리 눈앞에 좋은 게 있어도, 우리가 발 딛고 선 지구를 위해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곧 미덕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봅니다.
🌍우리가 서로의 호흡을 이해할 때
영화의 제목인 <숨비소리>의 의미는 "해녀들이 물질할 때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휘파람 소리"를 이릅니다. 저는 이 숨소리를 영화 내내 이어지는 쟈민의 간절한 호흡으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쟈민과 순옥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낯섦을, 또 쟈민이 이방인으로서 이 땅에서 느끼는 낯섦과 외로움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쟈민은 돌고래를 만나야 '한다'고, 혹은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영화의 사운드에 집중해보면,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소리, 찰박찰박 파도가 치는 소리 등을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쟈민의 궁극적인 목표로 대두되는 해녀라면 돌고래를 봐야 한다는 말. 이는 곧 돌고래를 보려면 잠수를 잘 해야 하고, 잠수를 잘 한다는 것은 해녀로서 이 땅에 안정적으로, 제대로 정착한다는 부분과도 이어지는데요. 쟈민이 깊은 심해까지 물질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밭은 호흡을 토해낼 때 우리는 곧 그 뒤에 숨은 쟈민의 '간절함'을 감히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보이는 곳에다 견출지로 이런 저런 단어를 붙이고 외우는 그이지만, 붙일 수 없는 것들에 '가족' 같은 단어가 포함되는 삶. 저는 이 대목에서 쟈민의 삶이 '52헤르츠 고래'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고도 불리는 52헤르츠 고래는 말 그대로 다른 고래들과 다른 헤르츠로 소통하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도 실재하는지 분명하지가 않은 고래입니다. 만약 해당 고래가 선천적 결함이나 혹은 기타 이유로 이 음역대의 음파밖에 발신할 수 없다면, 이 고래는 다른 고래들과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이죠. 다행히도 쟈민에게는 순옥과 동네 어르신들이라는 존재가 있어 고립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쟈민이 처한 환경이 그의 외로움을 완벽히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서로가 서로의 호흡을 이해할 때 우리는 각자의 삶을 향해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노래: 짙은 - 고래
이번 호를 쓰면서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가사보다는 제목 때문에 이 곡을 추천곡으로 넣게 되었지만... 글을 쓰며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또다른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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