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징징의 인사말"
벌써 4월 중순에 접어들었군요. 저번주 가장 큰 이벤트였던 투표와 투표로 얻게 된 휴일, 잘 누리셨나요? 모두들 후회 없는 선택을 하셨길 바랍니다! 여러모로 선거의 결과도 그렇고, 4월이니만큼 무겁지만 하고 싶었던 얘기를 오늘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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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한번 변할 동안
여러분은 선명하게 기억나는 오래 전의 하루를 몇 개나 가지고 계신가요? 오늘은 저의 10년 전의 하루, 꽤 오래 전이지만 선명하게 기억나는 하루를 꺼내볼까 합니다. 아마도 중간고사와 체육대회를 앞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굉장히 바쁘고도 빠르게 돌아가던 고등학교 2학년의 하루. 저는 매일 아침 등교할 때 휴대폰을 반납하고 기숙사로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돌려받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오전도 꽤나 평범하고 잔잔하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뭔가 어수선해졌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왁자지껄 급식실로 내려갔습니다. 급식실과 학교 중앙 출입구 사이에는 꽤 큰 벽걸이 티비가 있었는데요, 항상 뉴스 따위가 틀어져 있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속보'라는 이름으로 뉴스 앵커는 계속해서 반복적인 내용을 읊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한 척을 보여주면서, '세월호'라는 이름의 배가 침몰 중이고 승객들을 구조하는 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뉴스는 모두 구조되었다는(혹은 구조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소식을 전했고 우리는 다시 수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뉴스의 내용이 계속해서 바뀌더군요. 구조되었다는 것은 오보였고, 실상은 완전히 달랐죠. 그리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학생었다는 것과, 그게 저와 동갑인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는 것. 그날부터 며칠 간 계속되었던 뉴스와 우리의 웅성거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소리들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고 합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지나는 시간이건만, 어떤 이들은 이 10년을 빠르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이제서야 10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날부터 변화를 원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피어올랐다 사라졌지만 바뀐 것보다 바뀌지 못한 것, 아니 바뀌지 않은 것들이 더 눈에 띄는 요즘입니다. 세월호 사건뿐만이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판결, 최근까지 계속 이어지는 혜화역 부근의 장애인 시위 등에서 저는 간혹 '지겹다'는 반응을 보곤 합니다.
지겹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도 나름 바쁜 저만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전에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청소를 했고, 밥을 먹은 후에는 카페에 출근해 알바를 했습니다. 지금은 며칠 전 산 보이차를 내려 마시며 노트북을 두들기는 중이죠. 하지만 이 하루, 정말 저'만'의 하루일까요? 제가 오늘 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가깝게는 부모님 덕분이고, 조금 더 나가면 저 이전의 세대가 청춘을 바쳐 민주화운동,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독립운동 등을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기 이전에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 나아가 모든 생명들이 보낸 하루가 있었기 떄문에 저는 오늘의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보낸 평온한 오늘은 사실 저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잃어버리게 된 하루, 그리고 사실은 '잃어버리지 않을 수도 있었을 하루'를 위해 내는 노력의 목소리들은 쉽게 평가절하되곤 합니다. 지겹다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요? 우리 - 아직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사람들 - 가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만 겨우 반복될 수 있는, 촛불과도 같은 연약한 것들에 대고 우리는 정말 '지겨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요? 지겨움을 느끼기에는, 정말 수많은 것들이 잊히고 사라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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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지만 조금씩 짙어져가기를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영화는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입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니, 함께 연상하기 어려운 두 단어가 아주 잘 녹아들어가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양영희 감독 본인과 그의 가족들입니다. 꾸준히 자신의 역사를 통해 여러 쟁점들을 마주했던 감독은 이 영화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오사카에서 태어났던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씨는 1945년 오사카 대공습으로 인해 제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1948년 제주에서 벌어진 이른바 4.3 사건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동생들을 데리고 아주아주 힘겹게 일본으로 돌아옵니다. 이후 제주에서 겪었던 일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는 남편, 즉 양영희 감독의 아버지를 만나고 조총련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양영희 감독은 북한에 있는 자신의 오빠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죠. 지난한 역사들을 양영희 감독은 전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면서 어머니가 겪어야만 했던 그 역사에 대해 점차 알게 되고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해 공감하게 됩니다. 카메라 앞에서 제주에서의 일을 말하기까지 감독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경계하고 주저하고 망설입니다. 그러나 둑이 터지는 것처럼, 말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어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지게 되죠. 이후 감독과 가족은 직접 제주에 가 그 이야기들이 묻혀져 있는 땅을 밟습니다. 수많은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는 곳과 미처 기록되지 못한 이름들을 기리는 곳들을 어머니와 함께 계속해서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그 걸음걸음은 여러 이데올로기를 떠나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해줍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깊은 감정들을 우리는 스크린 너머로 공유하게 됩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하나로 정리될 수 없는 가족사를 통해 양영희 감독은 끊임없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얻습니다. "서로 생각이 달라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강정희 닭백숙 레시피'는 세대, 성별, 국적 등 많은 것을 뛰어넘어 '아라이 카오루', 양영희 감독의 남편에게 전해집니다. 뜨겁게 끓인 백숙의 연기는 희미할지언정 확실한 온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아마도 그 연기에 주목하지 않았을까요? 희미하지만 계속되었으면 하는, 그리고 사라지지 않고 짙어져갔으면 하는 그 연기에 말입니다. 양영희 감독은 어떤 언어로도 동일하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영화에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여러 감상이 떠오르게 하는 이 다큐멘터리를 이번 메일을 통해 추천 드립니다.
+) 이외에도 <지슬>과 같이 제주 사건을 다룬 영화들은 물론이고, 현재 극장에서도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영화가 개봉하고 있습니다. 영화라는 예술은 사회적인 문제, 즉 인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죠. 이후에도 이런 주제로 또 다른 영화를 추천드릴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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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하림 - 그 쇳물 쓰지 마라
또 다른 10년을 기억하는 노래, '그 쇳물 쓰지 마라'입니다. 당진 용광로 사고 10주기를 기념하여 나온 노래입니다. 당시 챌린지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영상들이 지금도 유투브에 여럿 남아있는데요, 라이브 영상 하나를 링크로 연결해 두겠습니다! 동명의 다큐 방송도 있는데요, 혹여 관심이 생기신다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TIP) 앨범 커버를 클릭하면 노래 감상이 가능한 유투브 링크로 연결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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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 - 그 쇳물 쓰지 마라
그 쇳물 쓰지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마라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 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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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초마의 인사말"
안녕하세요. 봄이 오나 싶더니 빠르게 스쳐 지나고, 초여름 같은 날씨가 된 4월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도 벌써 6개월이 흘렀다는 뜻이기도 하네요. 이곳을 통해 여러분들께 전할 이야기가 아직까지 잘 이어져 오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모쪼록 이번 한주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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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 사이
2024년 4월 3일은 제주 4.3 사건의 76주기였습니다. 이번 호에서 어떤 이야기를 다룰지 DJ징징과 이야기하면서 곧바로 이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소설의 분위기를 느껴보실 수 있도록 도입부에 나오는 부분을 한 번 소개해드릴게요.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비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 본문 중에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메인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마주했던 것처럼, 이번 작품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날의 일을 피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말이죠. 실제로 이 책은 <소년이 온다>가 문단에 공개된 이후 작가가 꿨던 어떤 '꿈'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주인공 '경하'는 어느 날 자신의 친구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인선'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전달된 건 인선의 입원 소식으로, 통나무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는 내용이었죠. 인선이 경하에게 부탁한 일은 집에 있는 앵무새를 보살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겨울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을 수 있도록 먹이도 주고, 챙겨달라는 부탁이요.
그렇게 경하는 폭설을 뚫고 인선의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경하는 오래 전 제주에서 벌어진 4.3 사건의 실체와 그에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점차 경하의 삶에서, 인선의 삶으로, 또 인선의 어머니이자 4.3사건의 당사자인 '정심'의 이야기로 그 범주를 확장합니다.
분량도 길거니와 시적인 문장들이 많아 자칫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드실 수도 있을텐데요. 세밀한 심리 묘사와 사건의 전개, 그리고 심도 있는 독백을 좋아하신다면 눈을 뗄 수 없을 거라 (감히) 장담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경하의 다짐이 드러난 문장들과 손가락을 잘렸지만 누구보다도 강인하게 그 상황을 이겨내는 인선의 모습이 인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그런 대목들에서 우리가 지나온 사건을 마주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지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책을 읽을 결심을 하셨다면 소설 속에서 '눈'이 어떻게 묘사되고 또 활용되는지를 살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빛과 어둠 사이를 꿋꿋하고 느리게 하강하는 눈의 이미지가,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여 거대한 해일처럼 몸집을 불린 폭설의 배경이 학살 이후의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소리 없는 싸움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제목의 선명함과도 맞닿아 있어요. 작가가 직접 밝힌 것처럼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끝까지 끌어안고 걸어나가겠다는 결의"를 느껴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코이라는 물고기를 아시나요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작은 어항에서 기르면 10㎝이상 자라지 않지만, 수족관이나 연못에서는 30㎝까지 크고, 드넓은 강물에 방류하면 120cm까지 성장하는 어종입니다. 특정 개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는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코이의 법칙'도 이 물고기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저는 코이의 성장이, 우리가 가진 공감능력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타인에게 쏟는 마음의 크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거든요.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것을 보고 경험하는지에 따라 내/외면의 성장도 정도의 차이를 가지는 거죠.
우리가 역사적 상흔을 다룬 책이나 다른 매체들을 접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그 감정이 타인의 삶을 더욱 가까이 느끼고, 살아보게 한다는 맥락에서였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경향신문에 실린 인터뷰가 좋아 함께 가져와봤습니다. "소설 후반부에 환상성이 있는데, 저는 '사랑'이란 것이 여러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사랑할 때, 우리는 나의 삶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삶을 동시에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내가 여기에 있지만 동시에 그곳에도 있게 되는 것이고, 그런 상태 자체가 초자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 인물들의 그런 간절한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노래: Liszt - Liebestraum No.3
가사 없는 노래를 추천드린 적은 있어도 클래식을 이렇게 선곡해본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녁이나 늦은 새벽에 틀어놓고 감상하기 좋은 곡이에요. 오늘 소개한 책과도 사뭇 어울리는 곡이라 들고와보았습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라이브 연주 버전으로 들어보시기를 바라요 🤗🍀
TIP) 앨범 커버를 클릭하면 노래 감상이 가능한 유투브 링크로 연결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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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EDBACK
이번 호도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저희 DJ들은 4월이 되면 기억하고 싶은 (혹은 기억해야 할) 주제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는데요. 조금 무거운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으나, 여러분도 관련하여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편히 남겨주시길 부탁드려요.
그럼, 돌아오는 한주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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