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치기 참 좋은 계절
살짝 다시 더워지는 것 같았으나, 추석이 어김없이 쌀쌀함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조만간 또 옷장을 정리하며 짧은 옷들을 집어넣고 긴 옷들을 꺼내야 할 것 같은데요. 매 계절이 대표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을은 정말 선명한 '트렌치코트'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주변 어른들이 많았고 그게 참 단순한 멋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막상 제가 크고 보니 트렌치 코트를 산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트렌치코트에 적합한 날씨는 며칠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죠. 조금만 덥거나 조금만 추워도 입을 수 없는 이 옷은 그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한 계절을 대표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 저만의 트렌치코트를 장만한 적이 없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하나의 로망처럼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조만간 길거리에는 또 이런 긴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바삐 걸어다닐 것이고, 저는 부러운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곤 할 겁니다. 흔히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들 하는데... 이렇게 긴 코트는 참 인연을 만들기 좋은 옷이고, 그렇기에 가을은 스치기 참 좋은 계절인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이 가을에 여러모로 잘 어울리는데요. 트렌치코트를 입은 주인공이 스쳐갈 뻔했던 인연을 만드는 이야기인 이 작품은 제목도 <만추>입니다. 굉장히 서정적인 이 영화가 벌써 15년 전에 개봉을 했다고 하는데요. 가을만큼이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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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랜만이네요.
이 작품은 사실 1960년대 원작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있는 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이 리메이크가 된 작품이기도 한데요. 2011년 김태용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만추>는 원작의 큰 스토리 라인은 따르면서도 굉장히 많은 설정들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남편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수감된 애나(탕웨이)는 어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72시간의 외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훈(현빈)을 만나게 되고, 몇 번의 스침을 지나 72시간 동안 함께 한 그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만희 감독의 원작이 영화가 가진 '영상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잘 담아낸 작품이라고 평을 받았던 것처럼, 이 2011년의 <만추> 또한 굉장히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습니다. 사실 가을이면 흔히 생각나는 붉은 낙엽이나 높은 가을 하늘 같은 건 이 영화에서 잘 나오지 않습니다. 시애틀의 가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안개가 자욱하고, 쌀쌀한 날씨에 사람들은 어두운 차림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렌치코트를 걸친 애나와 마찬가지로 긴 코트를 입고 휘적휘적 걷는 훈의 모습은 그 두 사람이 함께한다는 모습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상을 주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한 씬이 있는데요. 바로 애나와 훈이 시장에서 서로 깊은 대화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깊은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은, 애나는 훈이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말하고 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두 중국어 단어 '好'(좋다) '坏'(나쁘다)로 맞장구를 쳐줄 뿐입니다. 하지만 그 두 인물이 그 순간에 공유하는 것은 아마 언어로 형용될 수 없는 무언가일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훈이 반복해서 말하는 두 중국어 단어는 합치면 '好坏', '어쨌든'이라는 뜻이 되는데요. 애나가 토해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우리가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는 것처럼 들려서 저 또한 이 장면을 참 좋아하곤 합니다. 하지만 둘에게 주어진 것은 72시간이라는 인생에서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입니다. 두 사람은 마지막에 헤어진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의 힘을 붙들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난지 72시간이 채 되지 않는 그들에게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시간을 지켜본 우리는 알 수 없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두 사람이 결국 늦은 가을 우연히 만났던 것처럼 몇 번의 계절을 건너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죠. 출소한 애나가 약속했던 그 카페에서 "안녕, 오랜만이죠"라는 말을 뱉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훈의 모습은 비춰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 '소리'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을 보면 맨 마지막 카페 문이 열리며 들려오는 종소리가 이 장면에서 많은 것들을 대신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로맨스 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에는 저는 아마도 '트렌치 코트'의 힘, 즉 가을이라는 계절의 정서를 잘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이 영화, 아직 접하지 못하셨다면 이번 가을에는 한 번 이 영화의 매력에 빠져보심이 어떨까요! 영화를 보고나면 여러분도 제가 느낀 것처럼 아마도 긴 가을의 옷들의 스침이 조금은 기다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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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TANG Wei - 晩秋
영화의 분위기를 아주 잘 살려주는 ost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좋은 노래가 많은데요. 그 중에서도 주연 배우가 직접 부른 이 '만추'를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가사가 참 아름다우니 꼭 찾아보며 들으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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